까만양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아마도 스스로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이해하기위해 또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정상인의 사회에 맞춰 받아들이기 위해 정의한 표현일 것이다. 전의 포스트, 환상의 빛에서 썼듯 자살자의 이유를 규명하는 일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유미코는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리하여 계속 살아가기 위해 남편의 죽은 이유를 찾아다닌다. 채식주의자 또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받아들이기 위한, 그로부터 불이해에 대한 공포를 애써 무시하기 위한 , , 존재로 존재하기 위한 인간, 생명의 법을 어긴 범법자를 그들 나름으로 이해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리라.

이유가 중요할까?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꿈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이유에 대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와 관계 없이, 단지 꿈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행위가 존중받지못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가족이라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적절한 이유로 남을 이해시켜야하는 의무를 강요받는다. 우리가 과학의 세계에 살면서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타인을 의심하는, 태고의 원죄의 무게를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님 그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하는 자연적인 본능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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